소비가 예술이 되려면

우리는 소비하면서 산다. 물질을 소비하고 시간을 소비한다. 무언가를 생산하는 동안에도 최소한 시간과 땀은 소비한다. 소비의방식이 존재의 방식이다. 미국의 여성미술가 바버라 크루거가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am)”는 문구가 들어간 작품을 제작했을 때, 이는 단순히 현대인의 쇼핑중독을 힐난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 쇼핑이라는 방식으로이뤄지는 소비의 방식, 그리고 이 소비의 방식이 주도하는 존재의 양식에 대한 관심을 그는 그렇게 표현했다. 소비란 인간이존재하기 시작하면서 있어 왔지만 이제 그것은 인간의 모든 것을 가장 강력하게 통제하는 삶의 양식이 돼 버렸다.



이렇게 소비가 으뜸인 세상에서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소유 욕망을 갖게 됐다. 소비를 지속하려면 소비할 자원이 필요하다.이를 위해 우리는 물질과 시간을 확보하려 끝없이 애쓴다. 소유 욕망이야 본능적인 것이지만 급속히 늘어나는 소비에 의해 자극받으면한계를 모르는 이 욕망은 부풀대로 부푸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소유 욕망이 확대됐다고 하여 소유 자체가 더불어 증가하지는않는다는 것이다. 비리와 탈법을 일삼는 것은 이런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소유에 한계가있다면 행복을 위해 우리는 소비 내용을 바꿀 필요가 있다. 확보하기 어려운 자원을 소비하는 데 소비의 궁극적 목표를 둔다면 이는불가피하게 불만족과 불행으로 귀결될 것이다. 물론 우리는 운명적으로 물질과 시간을 소비한다. 물질과 시간을 소비 항목으로부터 뺄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들만으로 우리의 소비 항목을 다 채울 수도 없다.



우리는 물질과 시간뿐아니라 다른 많은 것을 소비한다. 이야기와 이미지를 소비하고 꿈과 낭만을 소비한다. 혈연·학연·지연 같은 관계를 소비한다.그리고 무엇보다 가치를 소비한다. 같은 대상이라도 모든 이에게 같은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니다. 자장면을 가족 외식 품목에서 가장낮은 자리에 놓는 어른도 있겠지만, 자장면만큼 훌륭한 가족 외식 품목이 없다고 생각하는 어린이도 있다. 같은 오페라 공연을보고서도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컷 코만 골다 나오는 사람이 있다. 가치는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다르다.



진정으로 바람직한 ‘가치 소비’는 소비 주체가 스스로 가치의 판관이 되는 것이다. 다른이의 가치 판단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게 아니라 자기 나름의 뚜렷한 신념과 기준으로 가치를 분별하는 것이다. 남들이 명품이라고하니까, 남들도 이 정도는 사교육비를 쓴다고 하니까, 남의 눈을 봐서라도 웬만큼 체면 유지는 해야 하니까 따위의 이유로 무턱대고소비한다면 그 사람은 ‘무가치한 소비자’가 될 수밖에 없다. 충동구매가 무서운 것은 단순히 필요 이상의 금전을 지출하게 하기때문만은 아니다. 스스로 가치 판단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노예가 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체적인가치 소비는 결국 가치 창조다. 가치는 주체에 의해 새롭게 발견되고 그 의미가 확장된다. 기업이나 정치인들이 많이 외치는 구호가운데 하나가 가치 창조다. 하지만 진정한 가치 창조는 소비자의 손에 의해 이뤄진다. 기업이 제아무리 혁신적인 상품을 개발하고정치인이 제아무리 개혁적인 정책을 수립해도 소비자와 유권자가 진정한 가치 소비자가 되지 못하면 의미 있는 가치 창조는 이뤄질 수없다. 그러므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소비가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술의 본질은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소비자는 그렇게 소유가 아니라 창조를 향해 나아간다.

버트런드 러셀은 말했다. “인간에게는 두가지 충동이 있다. 하나는 창조 충동이고 다른 하나는 소유 충동이다. 이 둘 가운데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창조 충동을 계발하고 강화하는 데 있다. 창조 충동이야말로 새로운 삶을 여는 열쇠다.”



창조자가 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현대의 소비자 앞에 놓인 햄릿의 질문이다.

이주헌 미술평론가/2007.12.7.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