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keback Mountain

며칠 전 중앙일보에 실린 세계적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 와의 인터뷰 내용 -“남자·여자 구분은 문화적 상징체계의 산물” - 은 사뭇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기존의 페미니즘은 남자와 여자의 성별(sex) 구분을 전제한 후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했다. 이와 달리 포스트모던페미니즘은 태어나면서부터 본질적으로 결정된 성적 정체성은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버틀러는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별(sex)조차도 사실은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젠더·gender)처럼 반복적인 모방적 실행을 통해 문화적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성별과 젠더의 구분을 거부하고 이들을 모두 제도적 지배 담론의 산물로 간주하는 것이다.
성 정체성의 해체는 이성애-동성애의구분조차 권력 담론의 일부로 비판하면서, 동성애를 이성애의 권력적 입장에서 천시할 근거가 없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여성주의 이론이 여성의 권리 향상 차원을 넘어 남성까지 포함한 소수자의 성애(性愛·섹슈얼리티) 문제로 관심이 확대되는 지점이다. 동성애에 대한 버틀러의 새로운 인식론을 ‘퀴어(Queer) 이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별이 인간 이해에 기본을 이룬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성별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 의해, 어떻게 주어지는가. 성별을 결정하는 것은 염색체인가, 호르몬인가, 아니면 해부학 혹은 다른 생리학적 특징들인가.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은 성별과 젠더(사회적 성)라고 하는것에는 ‘이름 붙이기’라는 강력한 실천적 행위가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여성적, 남성적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지만) 주디스의 이론대로라면 난 태어날 때 여자가 아니라 '인간'의 한 종류인 XX로 태어났다. 자라면서 여성적 성향을 띌 수 있고 남성적 성향도 띌 수 있는데, 남성적 성향이 강한 XX가 되었다고 치자. 그런데 난 여성적 성향의 인간 (XY, XX) 둘 다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애인이 'XY'여야 한다는 법은 없다. 내 주위엔 다양한 커플(XX-XY,XY-XY, XX-XX )이 있고 결혼 후에는 XX-XY 커플만 자식을 낳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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